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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박영우의 스포츠시야

[칼럼] 이동약자 이해 캠페인 ‘모두의 드리블’, 대학에서 해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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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드리블' 캠페인에 참여하는 참가자의 모습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더 스포리 박영우] 2021년 11월, 한국프로축구연맹과 K리그1 제주 유나이티드가 진행한 캠페인이 세상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바로 이동약자의 불편함을 체험하고 이해하는 ‘모두의 드리블’ 캠페인이다.
 
연맹과 K리그 타이틀 스폰서 하나은행, 사랑의열매가 진행하고 있는 사회공헌활동 ‘모두의 축구장, 모두의 K리그’의 일환으로 진행된 이 캠페인은 “드리블하며 갈 수 있는 길이라면, 휠체어도 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했다.
 
캠페인 참가자들은 출발지부터 시작해 드리블을 통해 공을 경기장 안에 가장 빠르게 보낼 수 있는 길을 찾아 나섰다. 이를 통해 참가자들은 이동약자들의 불편함을 직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고, 구단과 연맹은 GPS가 장착된 공을 추적하여 이동약자들을 위한 최적의 경로를 파악해 이동약자 안내지도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모두의 드리블’ 캠페인은 이동약자들의 K리그 접근성을 높이고, 사회 인식을 개선하는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 이러한 변화는 비단 K리그에서의 이동약자의 이동권 확보에 그치지 않고, 더 많은 곳에서 관련 캠페인의 확산이 이루어져야 할 필요성을 야기시킨다. 주 1~2회 열리는 K리그에 비해 훨씬 더 이동량이 많은 곳, 바로 대학에서 이동약자를 위한 캠페인을 진행하면 어떠한 모습일까.
 
필자는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경희대학교를 찾았다. 등하교를 하거나, 수업을 위해 이동하는 대학생들을 고려해 공을 굴리는 대신 대학의 캠퍼스를 꼼꼼히 살피며 공을 드리블했을 때 막힐 곳을 찾아보았다.

시작부터 이동에 큰 장애물을 만났다. ©박영우

   
후문에서 시작해 정문으로 향하는 길, 눈 앞에 보이는 건물 앞에서부터 큰 장애물을 만났다. 문과 대학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이동 약자를 위한 어떠한 장치도 보이지 않았다.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는 양 옆 구 한의대, 자연사 박물관 건물과 대조적이었다. 물론 문과대학의 앞쪽으로 가보았을 때 이동약자를 위한 엘리베이터와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후문으로 등교하는 이동약자들은 가까운 길을 뒤로 한 채, 크게 돌아가야만 하는 불편을 겪어야 할 것으로 보였다. 더불어 흡연 공간 역시 문과대학 뒤쪽에 있어 흡연을 하려고 해도 같은 불편을 겪어야 했다.

열려있지만 막혀있는 정경대 강의실로 향하는 길 ©박영우

이 정도 불편은 어쩌면 양호한 편일 수 있다. 문과대학 옆에 있는 정경대학 건물은 이동약자들이 아예 갈 수 없는 강의실도 존재했다. 문과대학과 달리 정경대학은 건물 내부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다. 이를 이용하여 층을 이동할 수 있지만 정경대학의 111호실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갈 수가 없다. 1층으로 내려와 1층 외부에 있는 111호실을 가려면 2개의 문을 이용할 수 있는데, 한쪽은 계단으로만 되어있어 이동이 불가하고 다른 한쪽은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지만 높은 턱이 있어 이동하기가 어렵다. 결국 111호실에서 강의가 있다면 이동 약자들은 스스로 강의실로 향할 수 없는 것이다.

이어지지 않은 인도가 만들어낸 보이지 않는 벽 ©박영우

 
아쉬움을 남긴 채 향한 곳은 문과대학 맞은편에 위치한 스페이스 21 건물이다.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스페이스 21건물은 경사로와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점자블럭이 있어 이동약자의 이동권이 충분히 보장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도로 앞에서 끊어져 있는 점자블럭과 인도는 안전한 이동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물론 교내에서 대부분의 차량이 서행을 하겠지만 문과대학과 정경대학 등 캠퍼스 뒷편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동약자들과 시각 장애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이동을 해야한다. 학교 뒷편으로 향하는 길에 인도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것은 비단 이동약자를 넘어서 비장애인 학생들의 안전 역시 위협할 수 있다. 만약 공이 이곳을 지나갔다면 지나가던 차에 찌그러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휠체어를 통해 이동하다 방심하는 순간 큰 사고로 이어질 경사로 ©박영우

횡단보도도 없는 차도를 걸으며 향한 곳은 크라운관과 학교를 올라오는 또 다른 길이다. 크라운관은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크라운관 옆 학생식당과 경희고등학교가 있는 등굣길은 상당히 위험해 보였다. 높은 경사에, 인도에는 점자블럭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이동약자들이 휠체어를 타고 등교를 하다가 살짝만 손이 미끄러져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경사였다.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 ©박영우

뒤이어 스페이스 21 건물 옆에 위치한 도서관으로 이동했다. 도서관은 이동약자를 위한 경사로가 완만하고 안전하게 잘 이루어져 있었다. 물론 도서관으로 향하는 3개의 경사로 중 한 곳의 포장 상태가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공이 굴러가다가 약간 튀어오를 정도의 울퉁불퉁함으로 앞선 사례들과 비교해 괜찮은 편이었다.

편하게 드리블 할 수 있는 유일한 길 ©박영우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정문이었다. 가장 많은 이동이 있는 곳인데 역시 점자블록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경희대학교 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공이 평탄하게 굴러갈 수 있는 곳이었다.
 
누구라도 이동약자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았다면 이렇게 꼼꼼히 살펴볼 기회가 적었을 것이다. 어쩌면 사회 여러 이슈들로 향한 우리의 스포트라이트가 더 어두운 무관심의 그림자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이동약자들의 입장을 생각해 볼 수 있었던 ‘모두의 드리블’ 캠페인처럼, 또 캠퍼스를 살피던 내내 따스하게 비추던 5월의 볕처럼, 약자들이 어둠 속에 감내하던 불편함에 빛을 비추어 세상에 긍정적인 반향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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